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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톡 개편이 말해주는 UX의 함정

요즘 한국의 교통 환경에서 가장 활발하게 바뀌고 있는 것은 노선이나 차량이 아니라 '읽는 방식'이다. 이동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공공 디자인 개편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대체로 그 결과는 좋다.

이수연UX Designer2026.09.13읽는 데 약 9분

1. 이동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요즘 한국의 교통 환경에서 가장 활발하게 바뀌고 있는 것은 노선이나 차량이 아니라 '읽는 방식'이다. 이동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공공 디자인 개편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대체로 그 결과는 좋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서울 지하철 노선도다. 1980년대에 만들어진 디자인을 40여 년간 덧대어 쓰다 보니, 노선은 23개 624개 역까지 늘어났는데 표기 규칙은 제각각이었다. 각도가 제멋대로인 다선형 형태, 일반역과 잘 구분되지 않는 환승역 표기, 한강이나 공항 같은 지리 정보의 부재, 역번호 없음. 정보는 많아졌는데 읽는 규칙은 없는 상태였던 셈이다.

2023년 개편된 노선도는 이 문제를 규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풀었다. 수평·수직·45도 대각선만 허용하는 국제 표준 8선형을 적용하고, 2호선을 원형으로 세워 전체의 기준점을 만들었다. 환승역은 신호등 방식으로 표기하고, 색각 이상자도 구분할 수 있는 색상 체계와 역번호를 더했다. 성과는 수치로 확인된다. 아이트래킹 실험 결과 역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대 약 55%, 환승역 길찾기 시간은 최대 약 69% 단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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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기존 노선도 (오)2023년 개편된 노선도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BIT)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예전 단말기는 노선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었다. 개선된 단말기는 이용자가 정류장에서 실제로 궁금해하는 것이 '어떤 버스가 곧 오는가' 하나라는 점에 착안해, 곧 도착하는 버스 순서대로 배치하고 글자 크기를 키웠다. 다음 버스가 몇 분 뒤 오는지, 저상버스인지, 차내가 얼마나 혼잡한지도 함께 보여준다. 화면 해상도를 높이고 굵은 글꼴을 쓴 것은 햇빛이 강한 낮에도 읽히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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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BIT 디자인 개편안 (출처: 내 손안의 서울)

역사의 대형 안내 전광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의 전광판은 검은 바탕에 텍스트만 나열해 가독성이 떨어졌다. 코레일은 이를 개편하면서 흥미로운 근거를 댔다. 이용객 행태분석 결과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할 때 출발·도착시간과 목적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는 점을 고려해, 시간과 목적지 순으로 정보 배열을 바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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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된 서울역의 전광판 (출처: designdb)

이 세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을 더 넣을지가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먼저 보는지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좋은 개편은 화면을 채우지 않는다. 순서를 바꾼다.


2. 창구에서 손 안으로

어릴 적 외갓집에 내려가던 날의 풍경을 아직 기억한다. 부모님은 역에 도착하면 곧장 창구로 갔다. 유리창 너머 직원에게 행선지와 인원을 말하고, 종이 티켓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정보는 사람의 입을 통해 오갔고, 결과는 손에 잡히는 한 장으로 남았다.

지금 그 모든 과정은 손안의 앱 하나로 압축됐다. 코레일의 예매 앱은 2010년 '글로리(GLORY)'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2013년 '코레일톡'으로 바뀐 뒤 13년간 같은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의 이동을 처리해왔다.

나는 코레일톡을 늘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앱'이라고 생각해왔다. 세련되진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이 정확히 그것뿐이었다. 출발역과 도착역을 고르고, 시간을 맞추고, 열차를 골라 결제한다. 화면에는 딱 그만큼만 있었다. 예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헤맨 적도 없었다.

그리고 2026년 8월 3일, 코레일톡은 KTX·SRT 통합에 맞춰 '코레일+'로 개편됐다.


3. 정보가 사라진 자리

개편의 공식 주안점은 '맞춤형과 편의성'이었다. 검색 화면에서 조건을 바로 바꿀 수 있게 하고, 정렬과 필터를 더하고, 결제 과정을 한 화면으로 모았다고 한다. 시인성을 높여 교통약자도 쉽게 쓸 수 있게 했다는 설명도 붙었다.

그런데 실제 사용감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특히 열차를 검색하고 발권하는, 이 앱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그 과정이 눈에 띄게 불편해졌다.

내가 이 화면 앞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각이었다. 기존 화면은 한 줄에 하나의 판단 단위가 놓여 있었다. 어디서 출발해 어디서 내리는지, 몇 시인지, 어떤 등급의 열차인지가 각자의 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훑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비교가 됐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한쪽으로 쏠려 뭉쳐 있다. 글자는 분명히 커졌는데, 커진 글자들 사이의 서열이 없다.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를 화면이 알려주지 않으니, 읽는 사람이 매번 스스로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이 감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앱리뷰에는 매진 여부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적과, 예전에는 바로 보이던 운임을 이제 몇 단계를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는 불만이 반복해서 올라온다.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중 무엇을 탈지 고민할 때 가격은 부차적인 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SR 앱에서는 금액이 바로 보이고 매진 구분도 더 잘 됐다며, 금액도 중요한 정보 중 하나 아니냐고 되물었다.

두 불만은 사실 같은 원인에서 나온다. 예전에는 매진 여부와 운임이 버튼 형태로 표시됐다. 버튼은 그 자체로 '누를 수 있음'과 '누를 수 없음'을 구분해주는 장치다. 색과 형태가 상태를 말해주니 읽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큰 글씨의 나열일 뿐이다. 형태가 사라지면 판단은 전부 읽기로 넘어가고, 읽어야 할 글자들 사이에 위계마저 없으면 결국 남는 것은 한 번 더 눌러 확인하는 일뿐이다. 운임이 몇 단계 뒤로 밀려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화면이 정보를 세울 자리를 잃은 결과에 가깝다.

여기에 정차역 개수라는 정보가 새로 들어왔다. 이 항목을 왜 넣었는지에 대한 공식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국토부와 코레일이 밝힌 개편 내용에는 메인화면 맞춤형 정보, 검색 조건 즉시 변경, 정렬과 필터, 결제 간소화, 그리고 여행 전반을 아우르는 MaaS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언급될 뿐 정차역 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만약 뚜렷한 근거 없이 추가된 것이라면 의문이 남는다. 기차는 지하철이 아니다. 승객이 정차역을 세어가며 알아서 내려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예매한 구간에서 안내를 받고 내리는 구조다. 발권 화면에서 정차역의 개수가 목적지나 운임과 나란히 놓여야 할 이유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정작 바로 보여야 할 가격은 안으로 들어가고, 굳이 없어도 될 정보는 밖으로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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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6-09-13 오후 11.29.52
(왼)기존의 발권 화면 (오) 개편된 발권 화면

4. 형식은 옮겨왔지만 문법은 오지 않았다

코레일+의 UI는 분명 요즘 감각이다. 모서리는 둥글고, 여백은 넉넉하고, 글자는 크고 굵다. 이른바 '토스식'이라 불리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앱 디자인의 사실상 표준이 된 그 형태다.

그런데 토스의 설계에서 큰 글씨는 장식이 아니었다. 한 화면에 하나의 판단만 요구하고, 그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가장 크게 세우고, 나머지를 물러나게 하는 구조였다. 큰 글씨는 위계의 결과였지 원인이 아니었다.

형식만 가져오면 이 인과가 뒤집힌다. 모든 글자가 커지면 아무 글자도 크지 않은 것과 같다. 여백이 넓어지면 관련된 정보들이 서로 멀어진다. 둥근 버튼이 그냥 텍스트가 되면 누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흐려진다. 시각적으로는 세련되고 정보적으로는 빈곤한 화면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앞서 본 코레일의 2017년 전광판 개편과 비교하면 대비가 선명하다. 그때는 '사람들이 무엇을 먼저 보는가'를 조사해 배열 순서를 바꿨다. 이번에는 배열을 재설계하기보다 표면을 갈아입힌 인상이 짙다. 같은 조직이 9년 사이에 정반대의 접근을 택한 셈이다.


5. 사람들은 어디에서 낯섦을 느끼는가

그렇다면 UI를 개선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면 개편과 점진적 개선 중 무엇이 옳은가.

이 질문 자체가 조금 잘못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많이 바뀐 것'에 화를 내지 않는다. 지하철 노선도는 40년 만에 완전히 새로 그려졌지만 반발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길찾기 시간이 절반 넘게 줄었다.

사람들이 낯섦을 느끼는 지점은 변화의 양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이미 만들어둔 머릿속 지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다.

오래 쓴 서비스의 사용자는 화면을 읽지 않는다. 기억으로 움직인다. 시간은 여기서 굴리면 되고, 매진은 이 색으로 표시되고, 가격은 이쯤에 있다. 이 기억은 사용자가 수년에 걸쳐 축적한 자산이고, 동시에 서비스가 쌓아온 자산이기도 하다. 개편이 이 기억을 못 쓰게 만드는 순간, 숙련자는 하루아침에 초보자로 강등된다. 불편의 정체는 기능의 부재가 아니라 이 강등감이다.

노선도 개편이 성공한 이유는 바뀐 방향이 사용자의 목적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역을 빨리 찾고 싶었고, 새 노선도는 그것을 더 빠르게 만들었다. 기억을 버리는 대가로 더 나은 능력을 얻었으니 손해가 아니다. 반대로 코레일+에서는 기억을 버렸는데 돌려받은 것이 세련된 모서리뿐이다.

결국 개편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범위가 아니라 근거다. 전면 개편이라도 사용자의 행동에서 출발했다면 받아들여지고, 점진적 개선이라도 트렌드에서 출발했다면 거부당한다. 그리고 그 근거는 '요즘 이런 디자인이 유행이다'가 아니라 '우리 사용자는 이 화면에서 무엇을 먼저 보는가'라는 질문에서만 나온다.

References

  1. 01서울 노선도 디자인 개편 — 내 손안의 서울
  2. 02서울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 개발 — 서울특별시 누리집
  3. 03버스정류장 BIT 디자인 개편 — 내 손안의 서울
  4. 04서울역 TIDS 디지털 안내체계 개선 프로젝트 — DesignDB

Written by

이수연

HCI디자인 석사과정을 밟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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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ussion

01 comments
  • 이수연2026.09.13

    마자요 ㅜㅜ 요즘은 디자인이 평준화 되어서 대부분은 이쁜데 정보의 위계나 사용성은 좋은가?는 별개인거 같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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